다스름
쿵! 딱! 따르르르르...딱!
아니리
수리봉 달무리 시린 새벽 도와 소쩍이가 울적으 당골 연화가 신청을 지켜 앉아 쌀점을 보는디 백설, 박속, 옥양목, 모시옷고름 웃질로 흰 쌀을 봉황 홍옻칠 교자상에 촤르르르르르 뿌려 놓고 북두성군, 제석천님, 시왕 용왕 산신님을 다 불러 모시것다. 금박 은박 오방 물린 색부챌랑 한 손으로 촤아악 펼쳐 들고 방울자루 요령 작대길랑 맺듯 끊듯 재금재금 재금 거리고 인절미 떡메 붙듯 발굼치는 신청 마루에 착하니 붙여둔 채 젖혀 세운 발끝으로 낭창낭창 물결 위 달빛처럼 걷는디 무슨 짝에 서산에 해 걸리듯 일장 사설 내걸어도 묵묵부답 암 짝에도 화답이 없구나. 화답만 없는 것이 아니라 뿌려 놓은 햅쌀만 여기서 벌떡 저기서 벌떡 벌떡벌떡 죄다 일어서는구나.
說
도화골 수분마을을 얕으막히 품에 안은 형세가 마치 수리가 둥지를 튼 것 같다 하여 수리봉으로 불리는 수분마을 안산이 신청 처마 멀리 희부윰히 깨어나고 있다. 방울부채를 눈썹에 얹고 수리봉 골 주름을 넘어오는 새벽빛을 바라보던 연화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참이나 헛구역질을 해댔다. 그때마다 한 입 가득 뿜쳐 뱉어진 핏물이 흰 소복을 적시며 눈 밭에 익은 남천촉 처럼 붉었다.
"필경 바늘 쌈이라도 삼킨 게야."
연화는 옷고름을 말아 입가를 눌러 닦으며 종잡을 수 없는 불길함에 한기를 느꼈다. 며칠째 수리봉 마루엔 숯덩이 같은 먹구름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다. 그 먹장구름들은 수리봉에 얹혀 몇 날 며칠을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런 숯뎅이 구름들이 한낮에도 수분마을 전체를 침침히 가둬놓고 있었다.
연화는 신청 향합에 새로 향을 사루었다. 그리곤 쌀점을 보던 교자상에 앉은반 자세를 갖춰 앉았다. 연화는 신의 의도를 묻기 위해 며칠 째 쌀점을 보고 있다. 하지만 신들은 연화의 간곡한 물음에 등을 돌리고 있다. 움켜 쥔 한 줌 쌀을 붉은 옻칠 먹인 상 위에 촤르르르 흩어 놓으면 그 모이고 흩어진 형상들 낱낱이 신의 전언이자 곧바로 연화의 신기였다. 하지만 수리봉이 먹구름을 불러들이면서 부터 연화의 쌀점은 아무런 효험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연화는 쌀 한 줌을 상 위에 흩뿌렸다. 쌀알들이 상 위를 미끄러지며 촤르르르 흘러간다 싶더니 어느 순간 벌떡벌떡 제 자리서 오뚝이 마냥 일어서고 만다.
"변괴인 게야, 그러잖구는 이럴 수가 없제."
연화는 붉은 옻칠 교자상 위에 벌레알처럼 슬어 있는 쌀알들을 손바닥으로 쓸어 눕혔다. 그리곤 수리봉 마루에 짙어지는 검은 구름떼를 바라보며 잘레잘레 고개를 저었다.
계면
"그리 마소 그리 마소 부디 그런 조화 부리질 마소. 수리봉 솟대 기러기 북천 바래 앉았것소. 날지 못해 앉았것소. 날기로 들면 동방 청제님 남방 적제님 서방 백제님 북방 흑제님 그리하고 중앙 황제님 두루두루 품어 안곤들 못 가겄소만 먹던 밥숟갈 집어던지고 신던 짚신 훌훌 풀어 버리고 바리바리 가라면 못 가겄소만 봄이면 안골 도화 흐덕지게 피고 여름이면 싸리울재 도라지 大海를 이뤄 가을이면 만산홍엽 동지참엔 대동풍장 높이 울려 사는 이승살이 할 일 많고 미련 많아 추동 알무 뽑아내듯 썩은 이 뽑아내듯 남이장군 언월도 휘두르듯그렇게는 쉽덜 않아 우수 경칩 백중 단오 가려운 데 손가드끼 고뿔 이마 신열 짚드끼 피사리 깜부기 여든 여덟에 열에 하나를 보태 아흔 아홉 손을 보고 백번 째 여문 곡기 신령님께 올렸으니 어여쁘다 가이엽다 두루 여겨 보살펴서 만복대운 정한 천기 일 점만 알려주소 비나이다 비나이다 만복대운 정한 천기 일 점만 일러주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