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른 무쇠솥 뚜껑이 툴툴댈 때마다 친구 어머니는 무명행주 곱사리 짜 눌러가며 질금대는 솥뚜껑 김 물을 걷어냈었다. 타닥질하는 아궁이 장작들이 너울불판을 곧추 세우며 장구 패는 소리를 내지르도록 친구 어머니는 마른 깻단을 한 웅쿰씩 아궁이 불 위에 밀어 놓아주곤 했었다.
"사람의 심도 그런 거여. 활짝 탈 때 다 타버려야 하는 거여. 낸 중에라도 더 태울 것이 없어야 하는 거여. 사람 심도 그렇게 먹어야 쓰는 법이여."
부엌 바닥이 살창에 널린 달빛으로 휘부윰히 젖어 있다. 나무쪽댄 미닫이 부엌문이 바람에 밀려 꺾인 목으로 문득문득 삑삑 마른 풀피리 소리를 뱉어 낸다. 흙바닥 먼지 얹힌 깻단에 그녀를 등너미로 앉히고 그녀의 등을 가슴에 받혀 안는다. 살창 삐친 달빛 젖은 프리즘 목덜미. 어름뜬물 든 그녀의 프리즘 목선이 겨울 고샅길 실금처럼 창백하다.
"이젠 어디로 가요?"
솥뚜껑 뒤집어 돼지 기름 두르고 조글조글 기름 탄 내 오르면 친구 어머니는 국자 가득 녹두빈대 반죽을 부우며 맵싼 연기에 고개를 외로 꼬곤 했었다. 친구는 그런 어머니 얼굴에 기름연기를 손부채로 모아 부쳐댔었다. 친구 어머니가 앉은 뒷걸음질로 달아나면 친구는 어정걸음으로 어머니를 쫓곤 했었다. 뒤란의 감나무가 가지 가득 떨감을 매달고 푸른 하늘에 칼금을 내던 이른 가을이었었다. 구절초가 마당 화단뜸에 싸리눈처럼 피고 장독대를 지피는 가을볕이 추녀마루 씨옥수수 두룹을 까슬까슬 말려대고 있었다.
"이자 어데로 갈래? 사람 맴에도 가을 가고 추분 겨울 온다. 해도 뭣보다 마음 따수부면 끄떡 없다. 사람이사 그래 사는 기라. 안 그라냐?"
부뚜막 어름 낮은 귀툴에서 곱등이가 울고 있다. 웅크린 목숨의 촉수. 허공을 더듬는 불안한 손사래를 위장한 채 뒷다리 껑충 부벼가며 곱등이가 울고 있다. 슬픔을 연주하는 울음의 현. 누구의 목숨이 눈물을 공명하는 슬픈 악보가 아니겠는가. 안단테 안단테로 혹은 스타카토로 목메이는 생의 악보를 잿가루 메인 아궁이 불쏘시개로 던져 넣을 수 있다면. 무쇠솥 뚜껑 질금대는 뜨거운 눈물도 무명행주 곱사리 짜 눌러 닦아낼 수 없겠는가.
라이터를 켠다. 부싯돌을 튕기며 발화하는 뜨거운 물음표를 마른 깻단에 던져 아궁이 가득 밀어 넣는다. 활활 타오르는 내 생의 가득한 물음표들. 그 불꽃에 두 손바닥을 펼친다. 진홍색으로 너울대는 가득한 물음표들. 그녀가 손을 뻗는다. 내 손바닥에 그녀의 프리즘 손등이 겹쳐진다.
"이제 어디로 갈 거에요?"
"따뜻한 곳."
불꽃. 손바닥과 손바닥을 감싸는 따뜻한 불의 온기가 진홍빛으로 겹친 나와 그녀의 프리즘 손바닥에 너울너울 날아들고 있다.
-말은 사람임을 증거하는 방편입니다.
그리, 사람답고자 기를 쓰던 어느 날의 연작 글을 다시
내어 놓습니다. 가끔은요, 걸맞지 않는 그 무엇을
억지로 꿰맞추는 무심함이 동할 때도 있다는 걸
이해해 주시길요.
손가락 훈련용입니다. 짚어,닥달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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