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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뒷담화

쓰지 못한 촬영원본-천남성 (수학다큐 : 수학, 숲으로 가다)

천남성은 우리나라와 중국에 분포한다. 한약계에서는 중풍 등을 다스리는 약재로 사용되는데
반면 독성이 강하다. 약이 되는 독. 흔히는 봉침을 떠올릴 수 있겠고, 
뱀의 독으로 약을 조제하는 서양의술도 이에 해당된다. 오늘 아프다.
하더라도 오늘 아픔의 약으로 내일이 독이 아니길 바란다. 
여름 양평 숲에서 만난 천남성 열매는 녹색기가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가을 2차 촬영 때 다시 만난 녀석은 빨갛게, 온 데가 다 빨갛게 독이 올라 있었다.
사실 대개의 열매들은 가능한 한 제 몸을 둥근 구체球體로 만들기 위해 열중한다.
공처럼 둥근 구체는 가장 적은 표면적으로 가장 큰 부피를 얻을 수 있는 도형이다.
겉껍질에 들이는 최소의 투자로 그 내용물을 가장 많이 담을 수 있는 최대의 이익을
식물들을 진즉에 알아차린 것일까.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다.
천남성도 그 중 하나로 완전한 구체를 이루지 못한 녀석의 열매 탓에
프로그램 내용으로는 쓰지 못했다. 물론 예외적인 사실도 언급해야 할 것이지만 늘상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입장은 담을 내용이 넘치고, 그것을 갈무리할 시간은 초를 다툰다. 
문득 그립다. 양평 수입리 숲 속. 약이 되는 독을 품고 있는 천남성의 숲.
헛헛히 병든 맘을 다스리는 약은 술이고, 그 술은 독이다. 공한 가슴을 치유하는 독. 술.
진도 홍주빛깔 머금은 천남성을 다시 본다.